안녕하세요, 님~
'처서 매직' 을 조금 실감하고 계시나요,
아침 저녁으로 조금 선선해진 공기에,
이젠 정말 가을이 오려나 보다 하는 느낌을 갖습니다.
시원하고 기분 좋은 나날들에 함께 읽어주시면 더 즐거울,
일곱번째 'Fable' 을 전해드려요~📬
가을은, 역시 이곡이죠.. 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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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1 - 어떤 시선
(feat. 푸르른 하늘, 우린 이 하늘이 보이면 가을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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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은 언제 가을이 왔구나 느끼시나요?
흔히 우리가 가을을 부를때,
하늘이 높고 말이 살이 찌는 계절이라 얘기하곤 하는데요,
정말 이제 우리가 올려다보는 하늘이 '가을이라고.'
우리에게 한 번씩 얘기를 걸어오곤 하는 것 같습니다.
푸르르고 깨끗해서,
무더운 여름을 지나온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파란 하늘 한자락씩 올려다보며
마음도 같이 시원해지는 가을 보내시면 좋겠어요.
제가 드리는 선물은 분명 아니지만, 가을하늘이 우리에게 선물이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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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경님, 똥손으로 찍어도 예쁜 마포대교에서 본 깨끗한 서울 하늘, 마포대교, 202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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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작가님, 하늘보기가 쉽지 않구만, 대만 고궁앞 숲 , 202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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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작가님, 하늘인지 강인지 햇살인지 반딧불이인지, 대만 Tamsui 강 , 202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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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Book Curation은 '짱고아빠', '짱고책방', 글도 사진도 트렌드도 놓치지 않는 월비의 탑지성 민혁님이 소개하는 박신양의 에세이 '제4의 벽'입니다. 아래 링크 타고 '짱고책방' 인스타그램, 블로그, 브런치도 살펴보시고 감성 충전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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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에서 무대와 관객석을 구분하는 가상의 벽을 '제4의 벽'이라고 한다. 우리가 수시로 접하는 연극, 영화, TV 등 모든 공연과 영상매체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개념이며 원리이다.
p.306
무대 위에는 배우들이 있고 우리는 관객석에 앉아있다. 손 뻗으면 닿을 거리기도 하지만 무대 위와 아래는 완전히 다른 공간이다. 무대를 가로지르는 이 보이지 않는 가상의 벽, 즉 '제 4의 벽'을 이 책의 제목으로 정한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이게 좀 궁금했다.
우연찮게 TV를 돌리다 보게 된 <유퀴즈>에서 발견한 작가 박신양은 내가 알던 배우 박신양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순례자라고 해야 할까. 꽤 오랜만에 TV에서 만난 그의 얼굴은 셀럽보다 철학자의 얼굴에 가까웠다. 진중하고 단어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다. 오랜만이었다. 타인의 눈이 아니라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한,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숙제를 풀고 싶어 하는, 그렇게 안으로 깊이깊이 침잠하여 유영하는 사람의 모습은.
북토크라는데, 심지어 셀럽이 출동해서 사람이 많이 모일 것이 자명한 곳에는 잘 가지 않는데 박신양이라 해서 굳이 신청해서 가게 된 이유도 그것이다. 알고 싶었고, 이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작가 박신양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왜 그가 누구나 선망하는 화려함 아닌 지방의 작은 작업실에서 물감을 온 몸에 묻히고 살아가는지 알고 싶었다.
그는 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지에 대해 들려주었다. 연기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좋지 않았고, 홀로 있을 때 누군가가 그리워졌다고 했다. 러시아 유학 때 만난 얼굴이 그리웠고 그러면 날아가 만나면 될 일인데 그는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한 획 한 장, 그리면서 그리움의 실체에 점점 다가서게 됐다고 한다. 물론 아직 그 그리움과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이 그림을 완성하면 이것이 해소될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꾸준히 그렸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이 10년이 넘었다.
또 그 긴 기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보러 왔단다. 친구, 동료, 가족.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하룻밤을 꼬박 새가며 그의 삶과 생각에 대해 이야기 하고선 헤어지며 꼭 한마디씩 던졌다고 한다. '그런데 그거 니가 그린 거 아니지?'
터져 나오는 한숨과 분노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 그렸다고 한다. 할 수 있는 게 그거 밖에 없어서. 그리다 보니 그림들이 이어지기 시작했고, 이미 연작으로 유명해진 <사과>, <당나귀>, <얼굴>에 대한 이야기는 TV에서도 이미 여러 번 소개되었다.(그러니 이 지면에는 줄이기로 한다.)
책은 이러한 그의 그림에 대한 박신양 작가 본인의 해설과 그 이야기를 받은 철학자 김동훈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투박하지만 진심을 전하고자 하는 작가와 그의 투박함을 우리의 언어로 풀어주는 철학자의 이야기가 꽤 즐겁게 읽히는데 TV에 나온 그의 이야기를 한 번 정도 봤다면 사실 더 쉽게 읽힌다.
북토크 마지막 질의응답에서 누군가 '작가님은 나는 누구일까라는 질문에 답을 찾았느냐'라고 물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이렇게 답했다. 어쭙잖은 생각이지만, 내가 누구일까는 이제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중요한 건 나를 누구로 만들 것인가 인 것 같다고.
머리를 쿵 하고 맞은 느낌이었다. 맞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너무 쉽게 하는데 '나를 누구로 만들 것인가'라는 이야기에 대답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그의 말이 옳다. 이제 우리의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예전부터 그의 팬이기도 했지만 더 팬이 되어 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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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의 벽'은 월비책방에는 아직 입고 전이라 작가님의 생각이 담긴 영상을 첨부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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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주 챌린지(26th week~30th wee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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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작가별로 읽을 수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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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
백석 시인의 시집을 선물 받았다. 1부는 시인의 시집 [사슴]의 작품들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검은 배경에 사슴 이라 적힌 1부의 시작을 알리는 첫 장을 마주하며 별안간 사슴에 꽂혔다.
NBA에는 밀워키 벅스 라는 프로 농구팀이 있다. 이 팀은 큰 뿔을 가진 숫사슴을 팀의 상징으로 한다. 큰 뿔의 숫사슴은 전장에서의 강력한 남성성을 상징한 것이리라.
해리포터에는 익스펙토 페트로눔 이라는 마법을 쓸때 각자의 페트로누스가 나오는데 그 중 해리의 엄마와 스네이프는 수려한 암사슴을 페트로누스로 사용한다. 이 수려한 암사슴은 해리의 엄마가 가지는 희생과 사랑, 스네이프가 가지는 한결같은 사랑의 상징일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사슴에는 인간 군상이 투영된다. 너의 큰 뿔은 우리의 용맹함이요 너의 아름다움은 우리의 매끄러움이다 하고 말이다.
그러나 실상 사슴은 어느 숲 속에서 그저 자유로이 뛰놀 뿐이다. 물을 찾아 돌아다니고, 주린 배를 채우고, 암수 한쌍 정겹게 놀고, 아직 덜 자란 사슴들은 서로 몸을 부대껴가며 숲 속 한 자리에서 그저 살아 움직일 뿐이다.
그들은 세상 자유롭다. 뿔의 단단함이 물론 그들을 그 위험코 자유한 자연 속에서 그들을 지키기 때문이겠지만, 그들은 애써 용맹하거나 애써 수려하기로 마음 먹진 않는 듯 하다.
내가 바라는 말 몇 자락 여기 적어놓는데도 사슴은 이미 길들여지지 않은 채로 이 산 저 산 뛰놀고 있겠지. 수 십년째 성탄절 초과 근로로 빨간 코 불태우는 실상은 사슴도 아닌 루돌프에게 평화와 안식이 그리고 자유가 주어졌으면 좋겠다.
- 안경준, #30, 20240728.
나의 첫 번째 사회복지사보수교육
어느 해 겨울쯤이었을 것이다. 상담팀 정규직을 그만두고 타부서 육휴대체계약직으로 옮기며, Y는 내게 말했다. 이 기관에서 오래 일하고싶으면 사회복지사 자격증은 따두는 것이 좋다고. Y는 그 때 주경야독 대학원에도 다닐 때였던 것 같고, 그 추천은 그 때의 나에게 오호라~였다. 그리고ㅡ3번의 도전 끝에 학사편입학하고 작년에 학사학위를 추가 취득했다. 이미 사회복지사자격증이 있었던 Y는 그렇다면 자신이 바랐던만큼 이 기관을 다니고 있을 까. 팀을 옮기는 것이 '오래'의 조건이었는데, 내가 잘못 이해했나.
이제는 유관업무가 아니므로 더이상 보수교육을 받지않아도 자격유지가 되는 것인지, 아무튼 '필요없는' 보수교육이 됐지만ㅡ내게 자격증 취득의 제 1 이유가 보수교육이었기 때문에(보수교육이 뭐길래, 일을 하루 안할 수 있는 지 7-8년 동안 진심으로 부러웠다. 게다가 교육도 내가 선택하고, 교육비도 기관에서 지원이라니!), 나는 보수교육을 신청하고 새로운 출근 루트로. 9-6, 8시간 교육을 오프라인으로 받았다.
보수교육 시작 전에, 이곳 '장'님이 나오셔서 교육장 리모델링으로 돈 많이 썼고, 사회복지사 출신으로 국회의원이 된 회비 잘 내는 든든한 분들이라며 그들의 소속 당과 권역 이름을 소개한다. 협회에서 처우개선 하기 위해 뭐하는 지, 특히 복지사들윽 정년 연장 노력한다만 보면 된다고 하며 그동안의 업적과 앞으로 '목표'를 공유했다. 15분을 썼고 ppt 6장이 지나갔다.
드/디/어 1교시 시작. 지난 날, 누구 앞에서든 영어로 말할 때 "나 영어 잘 못해."라고 영어로 말했던 내 모습이 스친다. 아 왜 그랬을 까. 상대방은 대화 시작부터 김새고 그래서 어쩌라고~ 했겠구나. 강사님은 정말 화려한 경력자이시고 3시간 강의 동안에 지루할 틈 없이 성실하게 강의해주셨는데ㅡ자신의 강의 시작부터 왜 그렇게 얻어갈 거 있는 지 모르겠다를 강조하셨는 지. 공통의 아묻따 겸손인지 뭔지 모를 것은 얼른 버려야겠다를 먼저 배웠다.
점심시간. 20분 정도 걸어가 아파트 상가에 들어갔다. 낮선 동네 이렇게 걸어다니는 거, 오랜만, 소소한 여행같다. 흐흐. 김밥집인데 백반도 종류별로 다 있는, 조금만 늦었으면 대기했했을 집, 주문하고 앉아 있으니 그런 식당에 들어갔다. 참치 김치찌개를 먹으면서 좁은 공간의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내 옆에 어린이가 앉았다. 그리고 그는 “늘 먹던거요.” 한다. 사장님은, ”동생은?” 하고, 그는 “올거에요.”한다. 어린이들이 엄마와 앉아 있는 테이블도 있고, 남매가 앉아서 라면을 먹고 있는 테이블도 있다. 초등학교 5-6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이에게 늘 먹던 거라고 하면 척하고 나오는 식당이 있다니, 뭔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상가를 나오다 들어갈 때는 보지 못했던, 블루리본 네 개나 붙은 빵집을 봤다. 어? 검색해보니 역시, 생활의 달인집이다! 생활의 달인을 보다가 한 번 쯤 찾아가서 사먹기도 하는 나! 돈 주고 샀는데, 얻은 느낌. 배부르지만, 빵은 괜찮아 하고서 얼른 먹고 싶은, 향기로운 빵집. 빠바나 뚜레 아닌 빵 집, 주일과 공휴일에 쉬는데 일할 때 빵 다 팔리면 문 닫는 빵 집. 지나가다 들렀는데 한 보따리를 샀다. 더운 날씨 때문에 다른 디저트를 사지 못해 아쉬웠다.
그리고 2교시. 사회복지사는 옹호활동에 소극적인가? 소극적이라면 왜 그런가? 사회복지는 정치적인가? 매 강의 마다 보수교육의 장점과 틈틈히 협회 회비 내라는 광고를 끊임없이 하는데, 뭐가 정치인지 모르나? 그리고 줄바꿔 쓰는 것도 아쉬운 3교시. OUR VOICE가 개선의 여부를 떠나서 그 장치가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지 역으로 깨닫는 시간. 또르르. 2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랐던 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년에도 보수교육을 신청할 것인가. 흠. 욥 베이커리 때문에 고민이다. 이래서 어쩔 수 없이 이 자리에 왔다는 식의 유머라고 생각하면서 이상하게 김새게 하는 말을 계속했던 것이구나...하는 교육장에서의 시간은 너무 별로였지만, 성실한 김밥집의 사람들과 욥 베이커리의 빵 맛 때문에 고민이 된다. 기관이 서울에 있지만, 지방에 있는 교육장에서 보수교육받아도 되나? 그렇다면 지방 빵 순례로 삼으면서 한 번 해볼 수도 있을텐데. 겸사겸사!
- 박경선, #27, 20240729.
아카펠라를 좋아하시나요
전화 업무를 하는 후원만족팀은 각자의 목소리가 가진 다양한 톤으로 후원자와 소통하는 곳이다. 가끔 모두의 목소리가 겹쳐져 한 데 어우러질 때가 있는데 그게 마치 아카펠라 같다. 리듬에 맞춰 나도 나의 톤으로 후원자 향해 무거운 입술을 뗀다. 팀에서 만들어 내는 합창 속 혹여 내 목소리가 불협 화음이 되지 않기를...
- 강하람, #3, 20240731.
잠시 너의 곁에
버스 하차 벨 앉은, 이 놈 시커멓다.
훠이!
얼마나 먹었는 지, 지금 황홀한가 보구나
나, 이제 내리는 데 널 보내 줄 지 고민이다.
너, 다시 날 수나 있니.
으!
아마 이 정도, 통쾌한 비명
아님 퇴근 길에 널 만나
그때 니가 날 기억할 지 모르잖아
기억은 분명 사라지니, 나는 널.
휴지로 감싸 후렸지
너의 것인지, 누군가의 것인지 모를
검다 할 지 핏빛 네 번째 손 끝에 퍼진다.
살생 출근 길에
- 박경선, #28, 20240731.
금요일 밤 11시, 창천동 우리 집 앞 풍경
재택근무를 끝내고 오늘의 스트레스를 날려 줄 피자와 치킨을 시켰다. 오늘 업무강도가 그럭저럭 괜찮았다면 시키지 않았을 거라고 익숙한 핑계를 댔다. 넷플릭스를 틀고 드럽게 재미없는 영화를, 그래도 재생은 눌러놨으니 끝은 내자는 심산으로 꾸역 꾸역 다 봤다.
배가 부르니, 잠깐 눈을 붙인다. 울리는 애플워치에 잠을 깼다. 30분 쯤 잤을까. 러닝 크루 오픈 채팅방에 이 무더운 날에도 러닝을 끝마친 사람들의 인증이 하나 둘 올라온다. 그래, 나도 사실은 저녁을 먹고 헬스장에 가서 아껴둔 유튜브 콘텐츠를 보며 천국의 계단을 타려 했었구나. 운동에 대한 자극을 받고, 워치와 에어팟을 챙겨 러닝을 한 타임 다녀온다. 한증막 런. 원래도 ‘땀보’ 이지만, 오늘은 특히나 배불리 먹어 무거워진 몸, 게다가 최근 들어 불어난 체중으로 더 무거워진 몸이 더운 습기 잔뜩 머금고 더더욱이 무거워져있었다.
어찌저찌 완수한 달리기 인증을 올리고, 샤워를 마치고 편의점을 향한다. 오랜만에 생긴 만원 짜리 한장 들고 시원한 음료수를 사마실테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다 다른 층에 잠깐 선다. 배달을 하시는 분이려나 하고 함께 1층을 향한다. 아, 내려 오기 전 땀에 흠뻑 젖은 옷은 쾌속 30분 세탁을 돌려놨다.
편의점에 들어가니 처음 보는 알바 선생님이시다. 대충 겉모습이 내 또래 이신것 같긴 한데, 보통 40대 형님들이 나를 보고 본인들 또래라 생각하시듯, 이 분도 어쩌면 20대의 청년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나랑드 사이다 1+1을 사고 만원을 건내니, ‘만원 받았습니다.’, ‘8천원 입니다.’ 하고 예의를 갖춰 계산을 해주셨다. 아무래도 처음 뵙는 분이 맞다. 손을 조금 떠셨다.
사이다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쿠팡 상품이 잔뜩 든 탑차 하나가 보인다. 그리고 아까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고 내려온 선생님이 보인다. 아, 물류 배송을 하시는 분 이시구나. 금요일 11시. 이 더위에, 저 분은 어느 정도의 강도로 하루를 보내고 계신 것일까. 나는 개인적으로 쿠팡을 악덕기업이라 생각해서 탈퇴 후 사용을 안하고 있는데, 그것은 노동자들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가 같잖기 때문이다. 그 옛날 쿠팡 물류센터 알바를 할 때도 느꼈고 코로나 때도 느꼈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누리는 편안함은 실은 누군가의 삶이 갈아넣어져 가는 대가임을 부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 그들 역시 노동의 대가를 ‘돈’으로 교환하고 있으니, 상관없다 할텐가. 돈의 무서움은 쉽게 오가는 몇 자리 숫자 앞에서 한 사람의 한 우주가 이 늦은 밤 무더운 더위와 싸우는 것에도 그 아무 고마움도 느끼지 못하게 한다는 데 있다. 글쎄, 난 이 문제에 있어서 참으로 골머리를 혼자 앓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내 급여, 내 환경은 어쩌면 내가 인식하지도 못하던 차에 어느 정도는 특권이겠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 것이다. 아무리 밖이 더워도, 난 시원한 곳에서 일은 하니까 말이다.
금요일, 재택 근무를 한 날에 약속이 따로 없다면 하루 종일 아무도 만나지 않는 하루를 보내게 된다. 그리고 그런 날엔 괜시리 이런 저런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는 것이다. 방으로 돌아왔고, 기가 막힌 타이밍이다. 빨래가 마침 딱 끝났다. 이제 널어놓고 다시 이어지는 자유를 맛 봐야지. 살이 많이 쪘으니 당분간 맥주는 패스다.
- 안경준, #31, 20240802.
AM 03:23
십년 같은 한 달이 지나갔다.
오랫동안 동료였고 1년 조금 더 팀원으로 있었지만 19명이나 있는 팀원 중 한명으로 딱히 친해 질일 없다가 정말 이제 막 친해지려던 찰나에 퇴사를 하게 된 동료와 얼떨결에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장애인복지시설에서 복지사로 일하던 33년 지기 친구 역시 7월 말일자로 10년을 일한 시설에서 갑작스레 퇴사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위로와 응원을 전했다. 담당했던 장애인의 가족이 말도 안되는 사유로 친구를 고소해서 반년 넘게 경찰 조사 받으며 맨탈이 탈탈 털리고 번아웃이 와서 어쩔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참 아팠다.
벌써 3년째 같은 팀인 또 다른 팀원은 오랜 기다림 끝에 첫 아이를 출산한 기쁜 소식 역시 있었고, 30년 지기 친구는 여름 휴가로 놀러간다던 필리핀에서 마른 하늘에 날벼락처럼 갑작스레 카톡으로 이번주 결혼 소식을 전해왔다.
마지막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한지 20년이 된 나랑 같은 나이의 신림동 본가 단독 주택은 화장실 바닥에 싱크홀이 생기며 세면대가 내려 앉아서 물바다가 된 소식 역시도 마른 하늘에 날벼락처럼 카톡으로 작은형에게 소식을 듣게 되었다. 또 둘째 동서는 별일 없이 수년간 다니던 회사가 하루 아침에 폐업하며 갑작스레 무직자가 되었다.
십년 정도 긴 기간에 시차를 두고 생길만한, 시차를 두고 생겼으면 하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짧은 기간에 시차 없이 터져 나오며 십년 같은 한 달이 지나갔다.
아무도 내일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른 채 살아간다.
슬픈 일이 올지, 기쁜 일이 올지, 이 다음 순간에 나에게 당신에게는 천개의 가능성이 있다.
정답은 없다. 어떤 가능성을 선택하거나 선택 못한 채 닥쳐오더라도 하나도 잘 못 되지 않았다. 잘 못 되지 않는다. 우리에겐 다음 순간 또 다른 천개의 가능성이 있으니까. 기억 할 수 있는 순간 순간을 즐기며 다음 가능성을 기대하며 살아갈 수 있길 오늘도.
- 김경태, #29, 2024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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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삶과 무한의 가능성, 자유 의지 그리고 망각
정답은 없다. 선택에 따른 결과가 있을뿐. 정답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하지만 인간은 찾을 수 없는 정답을 찾으려 한다. 그래서 기어코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결과를 정답으로 만들어 낸다. 이것이 합리화다. 그것이 어떤 결과이든 스스로의 선택에 최선을 다하고 결과를 인정하는 사람은 쉽게 그 다음 선택지로 그 다음의 가능성으로 향해 가지만, 정답이 아니면 어쩌지 걱정하는 사람은 이미 선택한 것에도 쉽게 집중을 못하고 즐기지도 못하고 그렇게 나온 결과값 또한 인정을 못한다. 그리고 다음의 선택, 또 다른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고 이미 나온 결과값을 정답이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키는 과정, 합리화 프로세를 거친다. 그 과정에서 기억과 감정들은 윤색되고 각색되어지고 정답에 꼭맞는 산식으로 수정된다. 그렇게 합리화된 결과 이후에 다음의 선택과 가능성을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그런 과정들이 반복되며 본래의 나와는 점점 동떨어진 항상 옳은 선택만 해온 정답의 삶을 살아가는 그런 틀에 갇힌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버린다.
이런 현상은 그래서인지 감정적인 사람보다 이성적 사고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서 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감정적인 사람은 자연스럽게 감정의 기승전결에 따라 넘어가는 일도 이성적인 사람에겐 한 단계 단계 마다 검증과 납득이 필요하기때문이다.
물론 감정적인 사람은 검증과 납득의 과정을 생략하는 만큼 이성적인 사람보다 살아가는 중에 훨씬 더 많은 실수와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지나치게 감정에 몰입해 극단적인 선택으로 치닫는 경우 또한 많다.
그래서 이것 역시 정답은 없다. 신은 우리에게 찰나 같은 삶과 무한의 가능성을 자유의지와 함께 주었을뿐이다. 그 가운데 누군가는 제대로 즐기는 삶을 살아가기도 하고, 누군가는 고민과 괴로움에 허덕이며 살아가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아무 생각없이 살아갈 뿐이다.
그리고 인간은 1차원적인 캐릭터가 아니라서 이성적인 결정만을 내리며 살아가거나 감정적인 결정만을 내리며 살아가진 않는다. 다양한 가면을 바꿔써가며 복합적인 결정을 하며 때론 이성적인 함정에, 때론 감정적인 함정에 빠지기도 하고 뛰어 넘기도 하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내려 간다.
난 감정적인 인간이라 대게는 감정적인 함정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의 감정에 매몰되어 이성적인 사고가 마비되고 상황에 맞지 않은 말과 행동을 하고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죄책감에 빠져 극단적인 상황으로 스스로를 몰고가 스스로에게 더 큰 상처를 준다. 이성적인 함정에도 감정적인 함정만큼은 아니지만 때때로 빠지는데 예상되는 잘못된 결과가 나왔을때 스스로의 우유부단함과 엉뚱한 선택의 과정을 인정하기보단 그래 난 이렇게 될줄 알았어 당연한 결과야 나의 변수는 완벽히 통제했지만 통제할수 없는 타인의 변수들이 이런 결과를 가져온거야라고 합리화를 시킨다. 그렇게 근본 전제부터 오류가 있는 프로세스가 쌓이고 거기에 더해 감정의 함정까지 발동되는 상황이 오면 정말 돌이킬수 없는 인생의 치명타를 맞게 된다. 좀 더 어렸을때는 주기가 짧았는데 경험의 힘인지 세월의 흉터들 덕분인지 이젠 자주 그러지는 않지만 십년에 한번씩, 이십년의 한번씩 그럴때가 있다. 그런 상처엔 약도 없다. 그저 묵묵히 다음 십년을, 이십년을 피흘리며 걷다보면 수십, 수백번 딱지가 떨어지고 흉터가 옅어지고 작은 흉터만 남아서 그런때가 있었다는 것만 간신히 기억하게 되는 날이 올거라는 걸 아니까. 신이 내린 최고의 선물 망각이 있으니까. 오늘도 그렇게 아둥바둥 찰나의 삶을 살아간다.
- 김경태, #30, 20240804.
지식in
매관매직은 무슨 마법이냐고 묻지 마라, 벼슬을 돈 받고 파는 부조리한 일을 말하는 거다 탐관오리는 무슨 오리인 거냐고 묻지 마라, 벼슬을 탐하는 더러운 관리를 뜻하는 거다 심심하다고 아무 질문을 하는 네게 나는 또 진지한 대답을 하게 되잖니 너는 그냥 묻지를 말아
- 강하람, #4, 20240805.
재즈 피아노
힘을 빼고 기대 봐
저 낮은 곳부터 한아름
희고 검은 색깔을
무지개로 칠할 수 있어
나는 지금 말하고 있어
그러니 페달은 밟지 않아도 돼
끊어지는듯해도 무한해
우리의 이야기처럼 한없어
- 홍경은, #7, 20240807.
Fake it ’til you become it
충분히 많이 하다보면 정말 그렇게 되고 그걸 내재화 하게 됩니다. [TED] 파일정보는 2019년 5월인데, 정확하지 않은 것 같다. 그보다 더 오래 전에 테드를 보다가 스샷한, 지속해서 보게 되는 문장. 업무에서서든 일상에서든 충분히의 정도, 많이의 횟수, 정말의 농도, 그렇게의 의미, 내재화의 깊이가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장은 몇 번의 휴대폰을 옮겨 가며 아직 남아 있다.
충분히; 모자람이 없이 넉넉하게.
많이; 수효나 분량, 정도 따위가 일정한 기준보다 넘게.
정말; 거짓이 없이 말 그대로임. 또는 그런 말.
그렇게; ‘그러하게’가 줄어든 말.
내재화; 어떤 사상이나 가치관을 자기의 것으로 의식화(意識化)하는 것.
N사전에서 검색해본 단어의 뜻을 읽으니 내가 ‘그러하게‘ 넉넉하게, 일정한 기준보다 넘게, 의식화 하고 있는 지 자신이 없다.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구나.
- 박경선, #29, 2024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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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나날들이다
요즘은 큰 낙폭 없이, 그렇지만 큰 자극도 없이, 다이어트로 인한 배고픔을 조금 참는 정도의 스트레스(사실 큰 스트레스)와 함께 일상을 무난한 모양으로 살아가고 있다.
주위를 가만히 응시하며 마주하는 재미난 풍경 하나 하나에 웃음을 짓기도, 그 상황이 재밌어서 메모를 잠깐 해두기도 한다.
보통 재미난 풍경은 여유 낭낭한 주말에 눈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지난 토요일, 버스를 타고 이동하던 중 사거리에 정차해서 본 건널목의 사람들이 재미있었다.
한 청년이 머리를 길게 기르고 문신으로 몸을 덮은 채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고, 그 뒤로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두 소년이 즐거운 기운으로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아마 주말 축구교실을 다녀오는 것 같았던 것이, 귀여운 축구 유니폼을 맞춰 입은 것에서 보인 것이다. '정우진', '이준오' 라고 크게 이름이 붙어있던 유니폼. 이 유니폼이 왜 그리도 귀여웠을까. 지금 내가 '안경준' 이라고 써진 유니폼을 입고 걷는다고 생각을 하니 괜히 웃기고 어이가 없어서 이 아이들을 귀엽다고 생각하고 그랬던 것 같다. 같은 하늘 아래에 참 다른 사람들이 살아간다 하고 혼자 재미를 느껴보는 것이다.
일요일 아침에는 홍대입구역 앞의 다이소 앞을 지나며 10시에 오픈런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고 또 재미있었다. 다이소도 오픈런을 하는구나하고 말이다. 홍대입구역 앞 다이소는 외국인들이 그렇게도 많이 찾는 다이소인데, 아마 홍대가 관광지여서 그런 거겠지.
삶에 여유가 들어오니, 사는 것이 참 좋고, 그렇다. 평범하고 옅은 색채로, 내 눈앞에 보이는 장면들을 보아내고, 들려오는 소리를 들어내고, 뭐 그렇게 저렇게 살아가 보는 게다.
- 안경준, #32, 20240813.
도둑X
환심을 사려 로맨틱한 이벤트를 준비했다 그녀가 눈물을 훔친다 결국 마음을 훔치는 데에 성공 최종 목표는 그녀의 집문서를 훔치는 것
좋아, 가자
- 강하람, #5, 20240814.
내가 좋아하는 관계의 모양새
내가 좋아하는 관계의 모양새
사랑 담긴 그리고 사랑 묻은 업신 여김
- 안경준, #33, 20240814.
몸을 그 곳에 두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로마서 12장 1절)
마커스 집회에 오랜만에 갔다. 봄부터 친구가 함께 가자 했었는데 여름 중반이 되어 가게 됐다. 뭔가 시작할 때 할까 말까 하는 시간이 긴데, 그 중에서 나는 주님 앞에 도전 받는 일에 대해서는 망설임이 더 길다. 그 도전이 나의 삶을 어떻게 이끄실 지 알아서? 아니면 알지 못해서? 이쯤 살았으면 주님의 말씀 앞에서는 바로 YES! 해야 하는데, 아직도 나는 내가 그분보다 나를 더 잘 안다고 생각하는 교만을 버리지 못해서, 이번에도 이렇게 한 계절이나 늦었다. 한편, 이번 주는 로마서 12장 1절, 다음 주는 2절, 그 다음 주는 3절이라고 하신다. 현장 참여는 연속으로 하지 못하겠지만, 이어 올라오는 영상으로 말씀을 들어야겠다. 몸-마음-생각 시리즈다.
내 마음은, 내 생각은 모르겠더라도 일단 몸을 ‘그곳’ 에 두자. 주님 부르신 곳, 가라 하신 곳에 그분의 뜻이 있고 시선이 있는 그 곳에서 예배하고 살자. 무엇이 먼저라서, 나중이라서 가 아니라 말씀하시니 몸을 두는 결정을 하자. 미치도록 하자. 정신 이상하도록 하는 미침이 아니라, 주님께 의미가 있는 삶에 일으킴과 영향을 ‘미치도록’ 무엇 하자.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주님의 말씀 영원하니, 주님의 마음 주님의 생각이 있는 곳에 내 몸을 두자. 사탄은 우리의 몸을 주장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흔들어 몸이 예배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몸을 먼저 예배의 자리에 두라. 그러면 너의 마음과 생각을 그가 지켜주실 것이다. 너는 너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곳에 두었는 지만 먼저 생각하라.
- 박경선, #30, 20240816.
마음은 수리중입니다
지난 수요일 설교 시간 목사님이 서로 다른 양으로 채워진 유리잔을 보여주며 결핍이 있는 아이들에게 이 사진들을 보여주면 그 아이들은 사진엔 자신들을 표현할 물잔이 없다고 그 아이들에겐 텅빈 물잔이 떠오른다고 했는데 그 때 나에게 떠오른 물잔은 깨어진 유리잔이었다.
난 매우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인간이다. 그런데 어린 시절 어떤 일을 겪으며 한동안 말을 잃고, 잠도 잃고, 식욕도 잃고, 감각을 잃고, 감정도 잃고 지냈던 한 때가 있었다. 아마도 그 시절 마음의 큰 한 조각이 깨어져 나가고 그 때부터 무언가 결여된 채로 살아온 것 같다. 모든 감정도 생각도 마음 안으로만 쌓고 또 쌓아갔고 이런저런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자주 서 있었던 것 같다. 늘 스물이 되기 전에 죽고 싶었고, 스물을 넘기고도 언제든 하나님께 빨리 대려가 달라고 기도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난 아마도 심각한 우울증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는 그냥 다 그렇게 사는거지 하루하루 사는거지 내 마음이 남들보다 조금 더 가난하고 궁상 맞은것일뿐이야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내 바람때문인지 실제로도 죽을 고비가 몇번을 찾아왔다. 그때마다 이제 갈 수 있구나 마음이 평안해졌는데 신기하게도 그럴때마다 만난 인연들이 멱살을 잡고 삶으로 나를 다시 끌어냈다. 저 사람들은 왜 날 삶으로 돌려 세워놨을까, 하나님은 왜 이랬다 저랬다 하시는 걸까, 나같은 하찮고 결여된 인간이 필요한 곳이 있을까, 누군가를 도와주고 나 역시 힘든 사람들을 삶으로 돌려 세울 수 있으면 내 삶에도 의미가 생길까 더 살고 싶어질까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이 씬에 들어서게 되었고 힘든 때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하며 마음의 공백은 여전했지만 뚫려나간자리는 날카롭지 않게 무뎌지고 찬바람만 드나드는건 아니란 사실도 알게되었다. 그렇게 살아오며 때론 아주 작은 조각이, 때론 중간 크기의 조각이, 아주 가끔 큰 조각들도 한조각씩 떨어져 나가는 날들도 있었지만 그때그때마다 이어진 누군가의 호의와 다정함으로 날카로움을 다듬고 감정과 생각들을 조심스럽게 제한적으로 가까운 사람들과 공유도 하며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현실에 충실하며 그럭저럭 잘 지내왔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서로 조금씩 사연이 다를뿐 각자의 아픔을 않고 살아가는 거겠지하며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찰나 같은 삶을 반복하며 하루 하루를 살아갔다.
마음의 큰 조각이 떨어져 나갔을때의 나는 때때로 눈물이 폭우처럼 쏟아져 내리고 마음으로 향하는 물줄기가 거센 급류가 되어 주변 것들을 범람하며 모든 것을 훑고 내려가 마음에 닿으면 하염없이 깊고 넓은 바다같던 마음에 풍랑이 일고 해일이 몰아쳐 온몸을 울리고 어느세 태풍이 되어 솟아 올라 육체와 정신과 영혼까지 나의 온 우주를 집어 삼키는 블랙홀로 커져서 나의 존재를 잃어버리고 정지 상태가 한동안 지속되곤 한다.
그러다가 정신을 부여잡고 힘겹게 가위에 눌린걸 풀어내듯 말단의 마음 한 조각을 깨뜨리며 현실로 돌아와 상황에 맞는 가면을 뒤집어쓰고 거짓말처럼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일을 하고, 가족을 돌보고, 생활을 해나가다 어쩔땐 시시각각 어느땐 하루 종일 멀쩡하다가 갑자기 불쑥 통제 할수 없는 상태가 되고 돌아오기가 반복 되곤 한다. 그럴땐 그래서 스스로 먼저 틈만 나면 사람이 없는 장소를 찾고, 시간을 만들어 아무도 모르게 누군가를 다치게 하거나 전염시키지 않게 마음이 맘껏 미칠수 있게 내버려둔다.
마음 조각들을 깨뜨리며 현실로 돌아올때마다 인간이었던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는 어떤 것을 하나씩 상실해 가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이렇게 마음 조각들을 모두 깨뜨리고 나서는 나는 어떤 존재가 되어 있을지, 혹은 존재 할수는 있는지 가끔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니까. 그저 살아가는 동안은 다 깨뜨리지 않고 한 조각이라도 지켜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묵묵히 하루 하루 지내다보면 때때로 찾아오는 호의와 다정함에 그리고 지나가는 세월에 오래된 구멍들도 새로 생긴 구멍들도 작거나 또는 커다란 구멍까지 모두 다 받아들이고 무뎌지게 되겠지, 그럼 덜 아프게 또 남은 삶을 살아가면 된다. 그렇게 끝까지 어떻게든 살아내면 그때는 하나님도 알려주시겠지 너의 티끌같은 삶이 세상을 운영하는데 이렇게 쓰임 받은 거라고. 의미가 있었노라고.
이렇게 언제나 내 마음의 입구엔 항상 수리중 팻말이 걸려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이 혼자만의 시간을 스스로에게 줄려고 노력하고, 그 나머지 시간에는 살아오며 아마도 본인들 스스로는 모르겠지만 호의와 다정함을 나눠줬던 사람들을 한명 한명 틈틈히 만나 나누는 일상적인 대화속에 그때의 온기를 떠올리려 노력하며 그렇게 마음을 수리하며 살아갑니다.
다들 그렇게 각자의 사정속에 오픈 팻말이 거의 일년 내내 걸려 있는 사람도 있고, 계절 장사처럼 때마다 오픈 팻말이 걸리는 사람도 있고, 매년 돌아오는 명절과 공휴일처럼 틈틈히 걸리는 사람도 있고, 저처럼 인테리어에 오랜 시간이 필요해서 폐업한 가게는 아닌데 항상 수리중 팻말이 걸려 있는 사람도 있는 거겠죠. 언젠간 세상 모든 사람들 마음에 오픈 팻말이 걸리는 그런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 김경태, #31, 202408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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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밤이면
아직은 마른 하늘인데
먼 곳에서부터 불어오는 습기찬 바람과
간간히 들려오는 천둥 소리에
곧 비가 올 껄 알았습니다
주섬주섬 런닝 복장을 챙기고 집을 나서니
총성 없는 신호에 달려나가는 경주마들처럼
후두두두두둑 굵은 빗줄기가
바닥에 가닥가닥 꽂히기 시작합니다
어제 심야에 눈물 훔치며 봤던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떠올라
Queen의 Love of my life를 들으며
빗줄기속으로 발 걸음을 내딛습니다
물기가 파고들어 축축함이 올라올수록
마음이 편해집니다
그렇게 걸으며 머리끝에서 발 끝까지
푹 잠기고서야 달리기 시작합니다
숨이 가쁘게 차올라 축축함을 잊을 정도로
차오를때까지 달려봅니다
그리곤 걸으며 축축함이 숨을 덮을때까지
걷다가 다시 또 달리다를 반복합니다
그러다 어느새 한참을 퍼붓던 빗줄기는
한방울씩 토독 토독 떨어지고
마음을 범람한 눈물은
다시 개울이 되어 흐르는 걸 보고
집으로 발걸음을 돌립니다
참 고마운 비입니다
- 김경태, #32, 20240819.
장례 로망
고3 여름 나의 첫 사랑은 모래사장에 일렬로 꽂은 폭죽들이 하나씩 튀어올라 밤하늘을 무지개빛으로 물들이듯 시작은 아름다웠지만 하이라이트를 장식할 가장 커다란 마지막 폭죽이 불발이 나고 제자리에서 터져 그으름과 화상만 남듯 최악으로 마무리되었다.
같은 모임에 있는 탓에 고백이 실패하고도 종종 마주칠수 밖에 없었고, 순수했던 미련은 눈빛에 문장에 행동에 남아 그녀를 불편하게 했었나보다. 그렇게 오해가 쌓이고 마지막 들었던 말은 ‘너 스토커야?, 소름끼쳐’였다. 그때 알았다. 사람들은 자신이 거부한 것을 다시 돌아보는 걸 많이 불편해 한다는걸, 끊어진 관계에 대한 최선의 예의는 깔끔하게 흔적을 지우고, 내 그림자조차 볼일이 없게,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것 처럼 완벽히 지워진 존재가 되는 것이라는 걸.
어떤 관계도 한번도 내가 먼저 끊어낸 적은 없었는데 살아오면서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단절을 경험하게 되었다. 친척도 있었고, 친구들, 지인들, 동료들, 그리고 연인이었던 인연들까지 좋게 좋게 마무리 된적은 드물고 대게는 지독한 악담을 듣거나, 싸늘한 인사로 마무리 되기도 하고, 소리소문없이 차단되고 연락이 두절되기도 했던 것 같다.
상대방이 절교를 이야기하거나 잠수를 타면 더이상 붙잡지 않았다. 전할수 있다면 마지막으로 상대방에게 그동안의 미안함 마음과 고마운 마음만을 전하고 조용히 그 사람과의 모든 연결고리를 끊어내고 나의 어떤 이야기나 흔적이나 그림자조차 눈에 띄이지 않도록 조심했다.
미련이 남지 않는건 아니지만 그게 한때나마 시간을 공유한 사람에 대한 마지막 배려이고 존중이고 할수 있는 최대한의 사과와 고마움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영영 소실되어 버린 것 같은 관계들 중에 대부분은 정말 영원한 평행선처럼 마주칠일이 없었고 앞으로도 아마 없겠지만 어떤 인연들은 그러다 수년 때론 십여년이 지나 우연히 다시 만나 지인이 되어 종종 연락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첫 사랑이었던 그녀 역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강 건너편 멀지 않은 곳에 살아서 가끔 만나는 동네 친구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르고 세월은 모든 걸 무뎌지게 만드나보다.
언젠간 죽기전에 한번쯤은 그 잃어버린 인연들을 전부 다시 한번쯤은 만나보고 싶다. 좋았던 일도 슬펐던 일도, 미안함과 미련도 망각하고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저 희미한 익숙함만 갖고 만나서 서로의 지나온 시간을 나누고 용서받고 화해하고 다시 잘 마무리하고 싶다. 나를 알았던 잠깐이라도 인연이 스쳤던 사람이라면 아무도 나를 미워하지 않는 세상에서 삶이 마무리되면 좋겠다. 그래서 내 장례식엔 그 모든 사람들이 찾아와 새로운 인연이 만들어지는 파티가 되면 좋겠다.
- 김경태, #33, 20240820.
위기의 사람들
당장의 생계가,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인데
교양이니 문학이니 매너니 그 따위 염병할 것들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빈곤 앞에서 문화란 사치이자 어리석은 것일 뿐입디다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저의 잘못일까요 그렇게 세상과 나에 대한 분노가 쌓여갑니다 그렇게 인간의 존엄은 무너지고 그렇게 인간다워지길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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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듯 잠 못드는 밤
충전이 필요하다고 붉게 반짝이는 눈동자
충전할새도 없이 어느세 밝아오는 월요일 아침
회색 빛 하늘처럼 기대없는 하루
사무실 책상에 가만히 놓여진 늦어진 생일 선물
깨진 물잔에도 물을 채우는 다정함에
따뜻하게 붉어지는 눈동자
촉촉함이 차오르고 또 하루를 살아간다
처음과 마지막에 남는 말
우리 우주의 처음 시작과 끝에 남는 말은
아무래도 사랑해 인 것 같다.
- 안경준, #34, 20240827.
아주 오랫만에 진짜 꿈
아주 오랫만에 꿈을 꾸었다.
어느 길거리에서 난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마침 그 거리를 지나던 어떤 뮤지션이 노래를 듣고 호평을 해주며 응원해주었는데 자기가 메고 있던 jansports 백팩에 싸인을 해서 내게 주었고 난 그 마음에 답례로 메고 있던 프라다 메신저백을 뮤지션에게 주었다. 낡고 실밥도 군데군데 뜯어진 백팩과 반딱이는 새로 산 프라다 메신저백이 묘하게 대비되었다. 그리곤 길을 걷다 아들과 조카를 만나서 어딘가로 가는데 사거리 횡단보도에서 아이들을 남겨둔 채 홀로 횡단보도를 건너갔다. 건너는 와중 돌아보았을때 아이들이 동서를 만나서 같이 있는 모습을 보고 안도하고 다 건넜을때는 마음이 참 가벼웠다.
부족한 잠에 늘 허덕이는 나에게 꿈을 꾸는 일은 아주 드문 일이다. 몇 년을 아무 꿈도 꾸지 못하기도 하고 많을 때는 일년에 한, 두 번 정도 꿈을 꾸기도 한다. 꿈보다는 망상속에 밤을 지새우는 경우가 많기도 하고 일상이 다 꿈같기도 한대, 정말 오랫만에 진짜 꿈을 꾸었다.
내 무의식속에 갈팡질팡한 마음의 추가 어딘가로 기울었나 싶은 꿈이다. 낡은 낭만과 함께 혼자가 되는 모습이 진짜 나 같아서.. 하.. 참.. 나도 나구나 싶었다.
- 김경태, #35, 20240830.
고양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더니 가르릉 하는 소리를 낸다 사람들은 이 소리를 골골송이라 부른다 딱히 아름다운 선율도 가사도 없지만 그 소리가 듣고 싶어서 머리를 조금 더 쓰다듬어주었더니 한 소절 두 소절 신이 나서 계속 부른다 아무래도 마이크를 갖다 줘야겠다
- 강하람, #7, 20240830.
달력을 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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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토요일 혹은 일요일엔 대대적인 집 청소를 한다.
이불도 빨고 발매트도 빨고 거북이 집도 청소하고 집 구석구석 쓸고 물걸레까지 하고 현관 바닥까지 닦아낸다. 냉장고에 오래된 식재료나 찬들은 비워내고 개수대 구멍, 화장실 세면대와 샤워부스까지 닦아낸다. 오후에 내내 청소를 하다보면 어느세 해질녘, 마지막으로 청소 도구들을 정리하고 집안을 한바퀴 둘러보다 벽에 걸린 달력에 시선이 멎었다.
7월에 멈춰있는 달력을 보고 한참을 나도 멈춰있는다. 두달 동안 달력처럼 나도 그렇게 스스로는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누군가 넘겨주기만을 기다렸었나보다.
달력을 넘기고 멈춰있던 내 페이지도 스스로 넘겨보기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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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8월은 어땠나요?
저의 8월은 한마디로 표현하면 '빛을 찾아서~!'였던 것 같아요✨
사진기를 둘러메고 일출과 일몰, 별들과 은하수를 태어나서 가장 많이 담은 한 달이 었던 것 같아요. 8월의 마지막 토요일 태안 운여해변 솔섬에서 담아 온 윤슬을 공유드려요. 삶이 어둡다면 제자리에서 밝아오기만을 기다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빛을 찾아 나아가보세요.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마주친 쏟아지는 빛무리에 마음이 따뜻해질꺼에요🧡
7월과 8월은 방학으로 함께 모이는 활동은 못했지만 각자의 상황에서 꼭 맞는 일자영활을 즐기셨길~👍👍👍
42주 챌린지에는 5분의 작가분들이 참여해 21개의 문장들이 더 채워졌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다양한 색채로 저마다의 색깔을 담은 글들이 꽃 피우는 FABLE 기대해주세요~🤩
님~!
'42주 챌린지' 계속 관심 가져주시고 구독 끊지마시고 '일자영활'에도 일정되시면 같이 체험하며 2024년 끝까지 함께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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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2달간의 방항을 끝내고 '일자영활(일상의 자극과 영감을 주는 활동)'다시 돌아왔습니다~두둥~👏👏👏
9월의 일자영활은 '해방촌 프리덤'입니다. 노을에 잠기고 노을을 밀어내는 어둠이 퍼져나갈때 뒤따라 들어오는 불빛들로 어느새 땅위에 가득찬 별들이 눈부신 서울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으로 님을 초대합니다.
🚩장소: 해방촌
🕙스케쥴: 9월 어느 금요일 퇴근 후
🧡기타: 아직 구체적인 장소와 시간은 정하지 않았습니다. 페이블러 멤버들과 일정 체크하고 확정하고 별도 공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일자영활'은 누구나 각자 호스트가 되어 개별의 주제와 일정으로 진행하실 수 있습니다. 님만의 일상에 자극과 영감을 주는 찾아서 혼자 하셔도 되고, 함께하고 싶은 활동은 언제나 공유하고 초대해서 모두와 함께 하셔도 됩니다. 일자영활에 대한 공지는 지금은 제가 호스트인 활동만 뉴스레터에 담고 있는데 미리 말씀해주시면 뉴스레터에 내용을 담아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일자영활의 게스트는 활동작가가 아닌 구독자분들도 참석 가능하고 지인분과도 같이 참석 가능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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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소리함을 클릭해
어느 글이 좋았는지
어느 작가를 응원하고 싶은지
아쉬웠던 점
읽으며 들었던 생각
편하게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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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ble>은 맴버들과 연간 다양한 활동과 글쓰기 '42주 챌린지'(2월 부터 11월까지 매주 한 줄이든 한 문장이든, 이야기 한 편이든 자유롭게)를 함께 하며 페이지를 채워나가고 연말에는 글과 활동 사진을 엮어 한 권의 책을 완성하려고 합니다.
님의 일상에도 한 방울의 영감을 더해주는 <Fab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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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BLE>
발행인 : 옆집오빠
편집부 : 허작가님, 안경
활동작가 : 강하람, 김경태, 박경선, 안경준, 홍경은
kyeongtae_kim@worldvision.o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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